프레임에서 벗어나기
해외 관광 도중에 복면을 쓴 괴한들에게 잡혔습니다. 한 사람이 총을 들이대며 묻습니다. “너는 기독교인이냐, 아니면 이슬람교도냐?”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가 대답합니다.
“저는 관광객입니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방법입니다. 어쩌면…
For example, consider the judge who must try his own son in a court of law. The law allows only two verdicts: “He is guilty” and “He is innocent”. For the judge, however, there is another possible verdict, namely, “He is my son”. The fact that we prohibit judge from trying cases in which they have a personal interest is a tacit admission that experience is not limited to the categorical alternatives of “guilty” and “innocent” (or “good” and “bad”, etc.) Only in the realm of symbols is the choice so clear.
During the Lebanese civil war, a story goes, a visiting American was stopped by a group of masked gunmen. One wrong word could cost him his life.
“Are you Christian or Moslem?” they asked.
“I am a tourist!” he cried.
The way that we pose our question often illusorily limits our responses. Similarly, the way that we think our thoughts illusorily limits us to a perspective of either/or. Experience itself is never so limited. There is always an alternative between every “this” and every “that”. The recognition of this quality of experience is an integral part of quantum logic. (The Dancing Wu Li Masters, p. 286)
The Dancing Wu Li Masters를 오늘 다 읽었습니다. 애초에 가지고 있던 반감이 아주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물리학의 문제가 결국은 우리 마음의 문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갑니다. (사실 꽤 수긍이 갔습니다.)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뭐, 결국 이게 이런 문제로 돌아온다는 것도 꽤 흥미롭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4권이었는데, 오늘 한 권을 끝냈습니다. 홀가분하군요. 그렇지만, 이 책 이야기는 한동안 할 것입니다.
이 블로그를 만들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저는 책을 많이 읽는데, 이것을 어떻게 일관되고 완결성이 있고 연속성이 있으면서도 남에게(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조직하고 제시하느냐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결국 일관성과 완결성이라는 기준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꼭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며, 모든 책에 대해서 완결된 방식으로 정리하지도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만 제외하고). 그 대신 지속적으로 쓸 것입니다. 매일 30분에서 1시간을 투자해서 제가 읽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 가운데 그날 가장 인상적인 것 또는 다른 날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쓸 기회가 없었던 것에 대해서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매일 밤 늦게라도 쓰려 합니다. 그렇게 해서 독자들이(일차적으로는 직장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일 읽을 거리가 있도록 하려 합니다. 그냥 제 목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