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어려운 이유는...
한때 저는 전원생활을 동경했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래서, 경기도 외곽의 동호인주택이나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타운하우스같은 곳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도 일부러 주말에 찾아다니곤 했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신나게 구경하러 갔는데, 마을 아주머니들이 모두 나와서 정겹게 마을 화단의 잡초를 뽑고 예쁜 꽃을 심고 계시더라구요… “이게 바로 전원생활의 맛이지…”라고 생각을 하며 집을 보여주는 집에 갔었죠. 그 집 주인 아주머니는 몹시 아파 보였습니다. 그래서 화단 가꾸는 일에 나가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통장 아주머니가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안나가면 혼난다고… 그래서 이사하려고 한다고… 저희는 이사를 가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으로 느껴지던지…
동네 모든 아주머니들이 이렇게 모두 “자발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나와서 마을을 가꾸는 이유는 당연히 집값이라는 마법의 주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종종 그런 모습이 눈에 띄더군요. 집값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공공시설이 들어오는 것은 결사반대하고, 임대주택에서는 가능한 떨어져 살려고 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어떤 수준 이하로는 집을 팔지 못하게 하고… 뭐 오죽하면 재경부장관도 못이기는게 아줌마들의 단결된 힘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겠어요.
다만, 이렇게 데모하고 단결된 힘을 보여주는 것을 정치에서는 시위라고 하지만, 경제에서는 담합이라고 한다는게 좀 다르겠죠. 얼마전 케이블 TV에서인가 보여주던 영화도(American Psycho였나 뭐 그런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뉴욕의 좋은 아파트에서 주인공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데, 그 이후 범죄자는 반드시 범죄현장을 다시 방문한다는 신념에 따라 다시 갔는데, 깨끗이 치워져 있고,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누군가에게 물어보자, “당신 누군데, 집값 떨어지게.. 자꾸 이러면 신고할거야”라는 협박이…
I got mugged on Christmas Eve.
I was in front of my Brooklyn apartment house taking out the trash when a man pulled a gun and told me to empty my pockets. I gave him my money, wallet, and cell phone. But then – remembering something I’d seen in a movie about a hostage negotiator – I begged him to let me keep my medical-insurance card. If I could humanize myself in his perception, I figured, he’d be less likely to kill me.
He accepted my argument about how hard it would be for me to get “care” without it, and handed me back the card. Now it was us two against the establishment, and we made something of a deal: in exchange for his mercy, I wasn’t to report him – even though I had plainly seen his face. I agreed, and he ran off down the street. I foolishly but steadfastly stood by my side of the bargain, however coerced it may have been, for a few hours. As if I could have actually entered into a binding contract at gunpoint.
In the meantime, I posted a note about my strange and frightening experience to the Park Slope Parents list – a rather crunchy Internet community of moms, food co-op members, and other leftie types dedicated to the health and well-being of their families and their decidedly progressive, gentrifying neighborhood. It seemed the responsible thing to do, and I suppose I also expected some expression of sympathy and support.
Amazingly, the very first two emails I received were from people angry that I had posted the name of the street on which the crime had occurred. Didn’t I realize that this publicity could adversely affect all of our property values? The “sellers’ market” was already difficult enough! With a famous actor reportedly leaving the area for Manhattan, does Brooklyn’s real-estate market need more bad press? And this was before the real-estate crash. (Douglas Rushkoff, Life Inc., pp. xi – xii)
아래는 icelui님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icelui: 크리스마스 이브에 강도를 당했었다.
손에 쓰레기를 들고 브루클린에 있는 아파트를 나서던 참이었는데, 어떤 남자가 총을 꺼내 들더니 나를 겨누고는 내 주머니를 털었다. 나는 그에게 돈도 내주었고, 지갑과 휴대전화도 빼앗겼다. 바로 그때, 테러 교섭 전문가를 다룬 영화에서 보았던 어떤 장면이 떠올라 나는 의료보험 카드만은 돌려달라고 그에게 간청했다. 그가 내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다면, 내 생각엔, 나를 쏘려고 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카드가 없이는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하는 내 주장에 그도 동의하더니, 카드를 도로 건네주었다. (불합리한) 제도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우리 두 사람은 이제 한 편에 서 있었으며, 그가 보여준 자비에 대한 대가로 나 역시 그를 신고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거래가 우리 사이에 성립됐다. 그의 얼굴을 내가 똑똑히 보았음에도 말이다. 내가 동의하자 그는 거리로 도망쳐 사라졌다.그 짧은 시간 동안공포에 짓눌려 내 뜻과는 상관없이 한 일이라 해도, 나는 미련스럽지만 철저하게 이 거래에서의 내 입장을 고수했다. 비록 몇 시간 동안 그랬지만 말이다. 총부리가 겨누어진 마당에 한 말이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랬다.
그와는 별도로 나는 이 별나고 끔찍한 경험을 적어 ‘파크 슬로프 부모들’ 게시판에 올렸다. 이 곳은 인터넷상에, 그들 자신의 가족과 또 대단히 진보주의적이며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그 이웃들의 건강 및 삶의 질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들, 식품 소비조합원들, 그 외 좌파 기질의 사람들이 모인 건강지향 모임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었고, 사실 위로와 도움의 말들을 내가 기대했던 것도 같다.
놀라운 것은 처음 내게 도착한 두 통의 이메일이 사건이 일어난 거리 이름을 적어놓았다는 사실에 분노한 사람들에게서 온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흑색선전이 우리의 자산 가치에 불리하게 작용하리란 사실을 나는모른단몰랐단 말인가? ‘부동산 매도 시장’은 지금도 충분히 힘들다! 유명한 배우가 맨하튼으로 이사 간다는 보도가 나오는 판에, 브루클린의 부동산 시장에 불길한 소식을 더할 필요가 무언가? 물론 이 모두가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어디나 가장 어려운 것은 현실이죠. 이렇게 책을 시작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이 이야기를 끌고갈까요?
Instead of collaborating with each other to ensure the best prospects for us all, we pursue short-term advantages over seemingly fixed resources through which we can compete, more effectively against one another. In short, instead of acting like people, we act like corporations. When faced with a local mugging, the community of Park Slope first thought to protect its brand instead of its people.
The financial meltdown may not be punishment for our sins, but it is at least in part the result of our widespread obsession with financial value over values of any other sort. We disconnected ourselves from what matters to us, and grew dependent on a business scheme that was never intended to serve us as people. But by adopting the ethos of this speculative, abstract economic model as our own, we have disabled the mechanisms through which we might address and correct the collapse of the real economy operating alongside it.
Even now, as we attempt to dig ourselves out of a financial mess caused in large part by this very mentality and behavior, we turn to the corporate sphere, its central banks, and shortsighted metrics to gauge our progress back to health …
So as our corporations crumble, taking our jobs with them, we bail them out to preserve our prospects for employment – knowing full well that their business models are unsustainable. As banks’ credit schemes fail, we authorize our treasuries to print more money on their behalf, at our own expense and that of our children. We then get to borrow this money back from them, at interest. We know of no other way. Having for too long outsourced our own savings and investing to Wall Street, we are clueless about how to invest in the real world of people and things. We identify with the plight of abstract corporations more than that of flesh-and-blood human beings. We engage with corporations as role models and saviors, while we engage with our fellow humans as competitors to be beaten or resources to be exploited. (pp. xvi – xvii)
icelui: 우리 모두에게 유용한 미래가 만들어지도록 협력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무기가 되는 한정되어 보이는 자원
을 두고에 대한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통해 더 큰 효율을 얻는일시적 이익을 우리는 추구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기업처럼 행동한다. 동네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을 놓고 파크 슬로프 주민들은 시민의 안전보다도나쁜 소문이 퍼지는 것을자기 브랜드를 보호할 것에 대해 우선적으로 염려했다.
경제 파탄이 물론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형벌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러나 우리 사이에 널리 퍼진 집착, 재산 가치가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한다는 그 집착이 최소한 이런 결과에 일정한 원인을 제공하기는 했다. 우리에게 긴요한 문제로부터 우리는 스스로를 격리시켰고, 우리를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도록 고안된 사업계획들에 매달려 살아왔다. 바로 이런사변적이고투기적이고 추상적인 경제 모델을 우리의 사조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런 경제 모형이 적용된 채과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실제 경제의 붕괴 위험을 처리하고 수정할 자정기능을 우리는 무력화시켰다.
바로 이런 성향과 행동에서 상당한 원인을 찾아야 할 이 경제적 혼동의 구덩이에서 우리 자신을꺼내어 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구출하려 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기업의 영역과그 중심에 선 은행들에 의지하며중앙은행들과 근시안적인 측정 기준에 기대 우리 경제가 예전 건강했던 수준으로 나아가고있다는있는지 평가를 내리고 싶어 하며, …….
그러니 기업들이 무너지면 덩달아 우리도 일자리를 잃으므로 우리의 고용 전망을 지켜내기 위해 기업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면서도, 그들의 사업 구상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은행권의 신용금융 정책이 실패할 때는, 그런 은행들의 편의에 따라 돈을 찍어내도록우리의 국고를 열어재무부에 권한을 주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부담으로 지출을 늘리라고 허락한다.와 우리 아이들이 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내준 돈을, 이자까지 붙여가며 우리는 다시 은행에서 빌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아는 해결책이라고는 이것이 전부다. 우리의 저축을 깨서 월 가에 투자하는 관행을 너무 오래 지속하는 바람에, 인간이 있고 대상이 있는 실체를 가진 세계에 투자하는 법에 대해선 우리는 무엇 하나 아는 바가 없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 처한 곤경보다는 추상적인 기업들이 궁지에 처했을 때 우리는 감정적으로 더 크게 동요한다. 우리가 기업을 따라야 할 모범으로 또 구세주로 인식할 때, 정작 삶을 함께 영위해야 할 인간에 대해서는 물리쳐야 할 경쟁자나 소모하고 버릴 수단이라는 생각밖에는 품지 않는다.
우연찮게도 오늘 하루만에도 이렇게 문제는 어쩌면 비즈니스 모델도 아니고, 금융공학도 아니고, 어려운 경제이론도 아니고,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글을 두 개나 읽게 되네요. 다른 하나는 제가 좋아하는 잡지 가운데 하나인 “The Atlantic Monthly”에 실린 Did Christianity Cause the Crash? 그러니까 금융위기가 생긴 것이 기독교 때문인지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대충 살펴보니 기독교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제가 전에도 다른 곳에서 한 번 이야기한 텔레반젤리즘과 Prosperity Theology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사실 누군가는 금융위기의 원인을 경제에서 찾고, 누구는 금융공학에서 찾고, 누군가는 탐욕과 탐욕을 조장하는 제도에서 찾고, 뭐 그런다고 해서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죠. 다만 어디에서 원인을 찾느냐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에 대한 다른 대답이 나오겠죠. 이게 정말 어려운 문제죠. 계속 읽어 보겠습니다. 주말번역에 대한 글은 내일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