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번역놀이 #3] 글쓰기와 프로그래밍의 공통점
아래 글에서 점수는 그냥 점수일 뿐이고, 절대로 실력의 반증이 아닙니다. 얼마나 잘했느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전 글에서 이 점을 분명히 했어야 했는데, 별로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좀 찜찜해서 이번 숙제를 내기 전에 한 번 강조해 봅니다. 왠지 기껏 해 놨더니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잣대로 평가해서 올린 것 같기도 하고, 왠지 반칙을 한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이번주는 일단 변명으로 시작해 봅니다.
이전 숙제에 icelui님이 댓글에서 다음번에는 콜론과 세미콜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죠. 그러지 않아도 저는 이게 작문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책에서도 말한 것처럼) 동사죠. 이건 영어라면 뭘 하건, 말을 하건 글을 쓰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작문에서는 (그러니까 동사 빼고) 가장 중요한게 저는 바로 punctuation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의 글쓰기와 프로그래밍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첫째 곧바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punctuation이 아주 중요하다는거죠. 둘 다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게 바로 punctuation이죠. (ㅎㅎ 거의 반복학습)
그리고,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으로는 둘 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시킬 때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거죠. 차이점이라면 컴퓨터에게 시킬 때는 프로그래밍을 하지만, 사람에게 시킬 때는 (물론 말로 할 수도 있지만) 글로 한다는거죠. 여기에서 이어지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바로 이 둘은 모두 필수적인 문제해결의 수단이라는거죠. 앞에서도 인용한 On Writing Well에서 다시 인용해 봅니다.
All writing is ultimately a question of solving a problem. It may be a problem of where to obtain the facts or how to organize the material. It may be a problem of approach or attitude, tone or style. Whatever it is, it has to be confronted and solved. Sometimes you will despair of finding the right solution – or any solution. You’ll think, “If I live to be ninety I’ll never get out of this mess.” I’ve often thought it myself. But when I finally do solve the problem it’s because I’m like a surgeon removing his 500th appendix; I’ve been there before. (On Writing Well, pp. 49 – 50)
물론, 번역에는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해결 전략이 필요합니다. 어떤 전략은 그대로 먹히고, 어떤 전략은 먹히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전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죠.
어쨌든 오늘은 punctuation(마침표, 느낌표, 세미콜론, 대시, 콜론 등)에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고 (솔직이 여기 적당한 예문을 찾으려고 해 봤지만, 정확히 맞는 예문을 찾을 수는 없네요) 해 보시죠. 갑니다.
서기 1898년 뙤약볕 내리쬐는 한여름 어느날, 평양성 대동강 서편쪽 높은 언덕에 흰옷 입은 남녀 노소가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갓 쓴 노인, 아이 업은 여인네, 상투 바람에 잠방이 입은 농군, 머리 땋아 늘인 총각, 장삼 걸친 중, 관 쓴 학자님, 가지가지 차림의 사람 물결이 강언덕 바위 위에 솟은 조그만 정자를 중심으로 앞뒤로 밀려오고 있다. 참외 장수, 엿장수, 갈매기 알 삶아 파는 장수들의 외치는 소리, 가위 소리도 요란하다.
이날은 분명코 사월 8일 관등놀이도 아니요, 5월 단오놀이도 아니라, 평양성이 생긴 이래 이름도 처음 듣는 만민 공동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만민 공동회란 무엇인고. 1884년 갑신 정변 때 거사에 실패하여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 재필이 십년 만인 1896년에 본국으로 돌아와서 독립 협회를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문을 세웠다. 독립 협회에서는 그 활동 방법으로 황토마루 넓은 길에 정부의 고관들과 일반 국민들을 한자리에 모아 연설을 듣고, 정치를 토론하고, 정부에 건의를 하기도 하였으니, 이것을 만민 공동회(혹은 관민공동회)라고 하였다. 수천 수만의 군중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개벽 이래 처음이요, 연설도 처음이요, 백성들이 손을 들어 찬성하여 정부에 건의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니, 이것이 서재필 박사가 외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운동의 첫 시험이었던 것이다. (주요한저, 안도산전, 5 – 6쪽)
주말에 그냥 심심풀이삼아 한 번 해 보세요들~~
참,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가능하면 참여하시는 분들은 자기 블로그에 올리거나 아니면 disqus에 등록해서 사용하세요. 왜냐하면, 이게 자기가 쓴 것들만 모아서 볼 수도 있고, 꽤 유용한 기능이 많기 때문에 나중에 자기가 한 과정을 돌이켜보는데 아주 좋을 거에요. 제 말을 믿으세요… 나중에 생각해 보면 (심지어 무슨 이유에서건 제 블로그가 없어지는 경우에도) 자기가 한 일을 돌아보며 꽤 기분이 좋을 거에요. 이것도 제가 이 disqus 시스템을 사용하는 이유죠. 댓글은 댓글러의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 … :)
